경남 창원에서 복음전도사역 27주년을 맞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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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복음전도 선교사역 27주년을 맞이하면서
1991년 4월28일 서울불광동성서침례교회의 파송을 받고 복음을 들고 선교사역을 위해 경남 창원 땅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1975년에 월남전쟁이 끝나갈 무렵,참전했던 아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돌아와 도착 즉시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어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어머니는 보고 싶다며,빨리 집으로 오라고 울먹였습니다.
전화를 건 아들이 말했습니다."그런데 어머니,문제가 있어요.지금 제 옆에는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동료가 있어요. 그는 돌아갈 집도,혈육도 없어요.게다가 전쟁 중에 팔과 눈을 하나씩 잃었어요.그와 함께 우리 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대답을 했습니다. "글쎄다,아들아.네 마음은 알겠다만 며칠 정도는 가능하겠지. 어쩌면 몇 달도… 그러나 평생 그럴 수는 없지 않겠니?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세상에 그런 장애인을 언제까지나 함께 데리고 살 수는 없을 거야.괴로운 짐이란다.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거야..."
어머니의 이같은 답변에 아들은 무겁게 전화를 끊었습니다.그리고 며칠 후,어머니 앞으로 급전이 날아들었습니다.아들이 호텔 옥상에서 투신해서 죽었으니,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전화 통화를 한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니, 어머니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죽은 아들에게 간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습니다.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그 동료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우리가 했던 수 많은 말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두려운 일입니다."장애인을 한 두 달은 몰라도 평생을 같이 살면 괴로운 짐이 되고, 여러 사람이 불편하지 않겠니?"라고 했던 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
내 곁에 있는 상대방이 꼭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나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깊이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임하는 우리 사랑샘가족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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