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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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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희순
작성일12-04-20 00:00 조회8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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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단상(斷想)         


                          조희순(전 경남혜림학교장,현 마산문창교회 은퇴장로) 



오늘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입니다.




 UN은1981년〈세계 장애인의 해〉로 정해,전세계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사랑을 인류의 관심사로 환기시켰으며,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4월 20일을 법적 기념일로 제정하여, 매년 뜻있고 보람있는 행사를 해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의 날을 마련한 것은 심신의 장애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이분들이,장애를 이기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지적인 사회문화 환경을 만들어감과 동시에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받아들여 이해하며, 우리모두가 삶의 공동체로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데 그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정상인이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질병이나 갑작스런 사고,,또는 노쇠로 인하여 장애를 체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장애를 입게 된 불행한 이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일 수 있으며, 친지, 친구 혹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생활주변의 장애인을 정상에서 이탈된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며 무시하고 소외시켜 버리는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장애인의 날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그릇된 생각과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려, 참된 이해와 사랑으로 이들의 사회적 참여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날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상이라하여 정상인으로 자쳐할 수는 없습니다. 멀쩡한 육체이지만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재 횡행하고 있는 각종 사회적 범죄,부조리,가장 정상적이고 완전한 육체와 두뇌를 가진 많이 배운 이들이 범하고 있는 가장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들, 이들의 마음과 사고와 양심이 철저히 장애를 입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체적 상처를 입는 자만을 유독 장애인이라는 이름하에 사회에서 소외시켜 왔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본인이 이 곳 혜림학교로 부임하여 1년을 지내오면서, 눈물을 머금지 않고는 표현해 낼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정신지체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녔지만, 어머니에게 있어선 건강한 자녀 못지 않는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입니다.




 일상의 대부분을 장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장애 자녀와 어머니가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 후에 재활과 자립을 위해 학교생활을 보냅니다.




 그러나 학교와 가정이라는 반복된 생활을 13년 동안 하다가 막상 학교문을 떠나면 ,이들에겐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실제로 일생을 살아가기에는 얼마나 힘든 벽이며 장애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멸시와 소외가 담긴 시선 이외에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자립이 가능한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받아 들여 주는 직장이 없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있지만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현사회 실정입니다.




 지난한 해 동안, 우리학교 학생들을 위해 선을 베풀어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그러나 이 선한 분들 중에는 부끄럽게도 하나님을 구주로 삼고 사랑과 자비와 선을 베풀어야 할 기독교인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사를 뒤로 미루고, 보조교사로 자원하여 일년 내내, 정해진 날에 어김없이 학교에 나와 학생들과 교사를 도와주는 분들은 특별히 신앙을 지닌 종교인이 아닌, 평범한 가정 주부들이었습니다. 믿음도 종교적 신념도 지니지 않았지만, 힘들고 아파하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자원 보조교사들을 대할 때, 본인은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기독교라는 종교적 관점에서조차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사회적인 그것 못지않게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금년에 출간된 ‘표준 새번역성경’을 훑어 보고 새삼 느꼈습니다.




 현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상에 맞게 번역된 새 번역성경이지만, 장애인 용어들은 여전히 개역 성경에서 사용한 그대로를 인용하거나 조금 풀어 사용했을 뿐입니다.    


 개역성경에 나오는 용어들은 일반 사회에서 다소 비속한 느낌이다 비하된 어감으로 받아들여져, 언어습관적으로 불쾌한 느낌을 주는 용어들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새 번역 성경에서는 이 점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즉 소경을 눈 먼자 또는 보지 못하는자, 귀머거리를 듣지 못하는자, 절름발이를 다리를 저는 자로 나타냈을 뿐이며, 출애굽기 4:11과 사도행전 3:1절에는 개역성경에서 사용한 그대로 벙어리,귀머거리, 앉은뱅이로 사용했으며, 레위기 21:19절에서는 곱사, 난쟁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언어장애인,청각장애인,지체장애인,정신지체장애인,척추장애인 등의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레위기 21:19에 나타난 ‘손발을 다쳐 장애인이 된 사람이라 번역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몇가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기업인들이 장애인을 받아들여 직업훈련원을 설립해 실질적인 자립기반을 제공해 주면, 교회는 종교적 차원에서 이들의 개인생활을 안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들의 여가 시간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특히 선교차원에서 전도하기 힘든 정신지체장애인들에게 말씀 전할 수 있는 교재개발 연구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좋은 예로 서울의 카틀릭 사회복지회에서는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기독교적 교회활동을 초교파적으로 하기 위하여 1993년 4월 1일 정신지체자 교리교육 교재개발 모임을 발족하였습니다.




 이와같이 기독교적 차원에서,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이나 장애인 수용시설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 등, 범 장애인 복지정책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사랑은 나누면 곱이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장애인 문제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생각해 보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 장애인에게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위로와 격려를 심어주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생활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소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장애인의 날인 오늘 우리학교 학생들의 맑은 모습속에서 새삼 떠 올려봅니다.


              < 1993년 5월 9일 문창교회 길지에 개제된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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