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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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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09 00:00 조회1,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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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로의 하나님 (고린도후서1;1-4)




  가장 위대한 목사 중 한 사람으로서 큰 회중을 인도하였고, 자신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던 존 헨리 조웨트 박사는. “여러분은 생각하기를 나에게는 삶의 기복이 전혀 없고 끊임없는 기쁨과 영적인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종종 완전히 비참해지고 모든 것이 가장 어두워 보일 때가 있곤 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고 참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에게서 이런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설교의 왕자라고 불리웠고, 런던 태버너클침례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스펄전도 “내가 영적으로 낙망할 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내가 간 그 비참한 곳에는 아무도 이르기를 원치 아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8-9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라고 고백을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인격은 훌륭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하여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그의 사역도 훌륭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서신에서 “내가 낙망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을 자주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바울 자신도 낙망할 수 있는 여건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8-9을 보면 그가 얼마나 힘든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우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시험과 우리가 겪었던 낙망의 터널을 저들 또한 지나갔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열쇠가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로’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격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성경 원문에서는 이 단어가 명사형 ‘파라클레시스’, 동사형 ‘파라클레오’로 되어있는데 이 말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옆에 있도록 부름을 받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려운 역경과 많은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격려와 위로가 가득 찬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심한 고생을 겪었고, 시련을 당하며, 삶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그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한마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낙심될 때, 그만두고 싶을 때, 자신의 주위 환경과 여건이 압박하고 소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9에서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이제 내가 죽었구나!’하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위로와 격려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낙망의 늪 속에 빠지지 않고 일어나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1:3에서 그는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처한 환경으로는 기쁘고 즐거워서 노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찬양하며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환경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낙망의 늪 속에 빠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잃고 낙망 중에 있을 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비결은 ‘찬양’입니다.


  ‘기도가 사물을 변화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찬양이 사물을 변화 시킨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찬양할 때 사물이 변화됩니다.그러면 왜 찬양해야 합니까?


첫번째로,그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그 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먼저,과거의 축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런 축복은 죄 사함을 받으며, 영생을 얻고,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미래의 축복과 산 소망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불멸하는 미래의 기업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환난과 시련이 닥칠지라도 그것들이 그들의 믿음이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기뻐하고 찬송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현재의 축복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사람, 환란과 시련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릴 때 일어설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던 사람들, 낙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로,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므로 찬양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버지라고 할 때 ‘기원자, 창시자’라는 뜻을 지닙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한복음8: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귀는 ‘거짓의 창시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자비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자비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다.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궁하신 긍휼, 연하여 베푸시는 긍휼, 크신 긍휼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므로 찬양해야 합니다.


 어렵고 낙심되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위를 바라보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으로 낙심될 때 자기 자신, 자기 감정, 그리고 주위에 있는 문제에 초점을 두기 쉬우나 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주를 바라볼 때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이 하나님 되시기 때문에 찬양합시다. 그분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양합시다. 그분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양합시다.




글쓴이/ 김우생(사단법인 사랑샘공동체 고문,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총장,재단법인 성서침례교회유지재단 대표이사,극동방송5분말씀 설교자,서울불광동성서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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