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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정과 사랑샘사역으로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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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성기
작성일11-05-25 00:00 조회1,1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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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오월이 되면 가족단위로 여행을 가고 오순도순 지내는 모습을 떠 올린다.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느끼며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가정들,가족들이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가슴이 저려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가정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고,그저 고생하고,아프고,힘들고,괴롭고,슬픈 추억만 간직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한량이셨다.아내와 자녀들의 부양은 물론이거니와 가정경제를 절대로 책임지지 않았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분이셨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신 이후로 아버지는 가출하셨다.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만에 태어나서 보니 가정에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와 누나와 형이 있었다.


가정에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들은 가난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뿔뿔히 흩어져서 생활해야 했다.어머니는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언젠가 가족들이 만나서 함께 지내기로 하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서로 헤어져서 지냈다.


우리 형제들은 부산에서 태어나 나는 경남 고성 하일면 이모댁에서,누나는 부산 반여동 이모댁에서,형은 경남 사천 사남면 이모댁에서,부모없는 고아(?)라는 이유로 이종사촌들과 많은 다툼과 따돌림 등 수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 시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양부모가 있는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나중에 성장해서 이모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는 유난히 별나고 대단한 심술기가 있었다고 했다.


내가 아홉 살 때 나에게 그동안 없었던 아버지가 생겼다.내가 외가가 있던 경남 사천시 정동면에 있는 신월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에 가족들을 버리고 오랫동안 가출하셨던 아버지는 빈털털이로 집으로 돌아오셨던 것이다.


없었던 아버지가 생겼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외형적인 것,가난한 모습 때문에 금방 실망하고 말았다.그 후에 아버지가 돌아온 시점에서 외가가 있던 경남 사천에서는 살지 못하고 부산 연산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오랜기간동안 흩어져서 지내던 우리 가족들이 함께 만나서 생활하게 되었다.


꿈에도 없었던 아버지가 생겼고,어머니와 형제들이 다 같이 생활하게 되어서 겉으로는 갖출 것 다 갖추어졌으나 가난한 생활을 탈피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꿈꾸어 왔던 행복한 가정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나는 부산 연산초등학교를 거쳐서 반송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초등학교를 세 곳이나 다녔기 때문에 자연히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친한 친구가 없이 늘 혼자 조용하게 지내는 아이였다.


가정적으로는 아버지가 복덕방(현재,부동산중개업)을 경영했으나 벌이가 시원찮았고,어머니는 이복형제들(3남1녀,고모댁이나 고아원에서 성장함)을 챙기시고,나의 위로 누나와 형,그리고 여동생 등을 양육하시느라 들과 산에서 나물이나 열매를 채취해 시장에 가서 팔아서 가정경제를 꾸려 나갔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나는 누가 시킨 것은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경제를 고민했다.초등학교 5,6학년시기에 여름방학에는 해운대에서 아이스케끼 장사를 했고,겨울방학에는 풍선공장에서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그 시기에 부산반송교회에 출석하면서 나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경제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그래서 정규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신문배달과 판매,각종 아르바이트 등으로 공부하여 문교부 인가가 없는 재건중학교인 고성기술중학교를 졸업했다.정규중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해 고입자격검정고시를 치루어서 합격했다.


그리고,낮에는 돈을 벌고 야간에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실업계고등학교인 부산성지공업고등학교 기계과(현,부산성지고)를 진학하였고,낮에 신문과 학습지 판매,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2학년때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여 실업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에 병역혜택을 받기 위해서 방위산업체인 한국철강(1년 근무)과 대우조선(4년 근무)에 입사해서 병역혜택을 받으면서 학업에 대한 열의를 갖고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5년간의 병역혜택에 따른 의무근무기간을 마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 서울에 갔다가 그동안 벌어서 모은 돈 전체를 사기를 당하여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때가 내 인생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고,반면에 내가 추구하던 것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앞으로 평생에 지니고 살아야 할 분명한 가치관(고린도전서 10:31,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과 인생의 목표(마태복음28:19-20,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를 확립하게 된 시기였다.


그 시기에 서울 불광동성서침례교회에 출석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1996년 8월 여름수양회기간동안에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부르심을 확인하고,1996년 8월에 성서침례신학교에 입학하여,1990년 3월에 졸업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교 4학년 때인 1989년 5월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1990년에 아들,1993년에 딸을 낳았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불광동성서침례교회에서 조력을 하면서 경남지역에 대한 부르심을 확인하고 몇 차례에 걸쳐서 경남지역을 답사를 했다.1991년 4월28일에 서울 불광동성서침례교회의 파송을 받고 경남 마산에서 본격적으로 일반사역을 시작하였다.


일반사역을 진행하는 중에 시편 146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일반사역보다는 이 땅에 소외된 분들(알코올의존자,교도소출소자,노숙자,무의탁노인들,장애인,보호관찰대상자) 등 특수사역에 있슴을 확인하고는 1993년 10월부터는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을 시작하였다.


특수사역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시점에서 당시에 섬기던 일반교회를 1993년 12월에 사임하고 사랑샘선교회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특수사역을 시작했다.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을 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는다."어떻게 그 일을 시작했느냐,무엇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게 했느냐,그만두고 싶은 갈등은 없었느냐,언제까지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변은 나의 출생과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역기능적인 가족관계,어려운 경제생활에서도 지속된 배움의 관계,사회생활에서 실패를 통해서 경험한 좌절감과 상실감,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등을 통해서 설명되고 있다.


나의 과거사를 통해서 경험한 일들이 사역의 대상자들과 공감대를 갖게 하고 사역에 큰 밑거름이 된 것을 확인하고는 오랜기간을 두고 그 일을 조성하신 하나님의 섬세함을 느끼게 되었다.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이 시대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에 틀림없다.아울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잃어버려진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계속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이루셨다.1993년 10월부터 시작된 사랑샘선교회,1997년 10월에는 사랑샘침례교회의 설립,2002년 12월에는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인 사랑이 샘솟는 집의 설립,2004년 12월에는 사랑샘공동체의 사단법인 허가취득,2008년에 한국평생교육원 사회복지사 자격취득 등이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의 결실이자 보람이 되었다.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을 통해서 세상에서 소망없이 방황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누군가가 부축하지 않으면 홀로 일어나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걸을 수도 없던 사람들이 이제는 일어나서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이타적인 사랑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금년 10월이면 만 18년을 맞이하는 특수사역,사랑샘사역이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한 것이 많고 당면한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무엇보다 함께 일 할 수 있는 헌신된 일군과 자원봉사자들,그리고 재정적으로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실정이다보니 재정적인 후원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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