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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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미학(美學)
문희원(통영삼성병원 의무원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청춘예찬을 노래하며 젊음을 보내는 순간에는 느끼지 못했던 보배로운 것들을, 때가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며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역(逆)으로 젊은 시절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인생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알긴 해도 그것에 대하여 누구라도 감히 장담(壯談)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으로의 여행이나 서적 등을 통하여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지혜를 습득하려는 것일 테다. 성경에도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아서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 버림을 공감할 것이다. 태양이 힘차게 동산위로 솟아오를 때면 희망, 환희, 설렘 등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고, 어느새 두둥실 구름 몇 조각이 하늘에 걸려 한 낮의 풍경을 만들더니, 곧이어 황혼이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낮달이 벌써 동쪽 하늘위로 떠있는 것을 볼 테면 아하, 인생의 순간도 바로 이와 같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더욱 더 이런 생각에 몰입하게 되는데 오늘이 지나감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과거를 기억으로, 미래를 동경으로 껴안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잃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멀어져 가는 경험의 책장을 넘기고 있는 중이며, 그 페이지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자신을 거울로 비춰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 내어 보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인데,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를 즈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면 거기에 비례해서 지녀야 할 미덕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마음가짐일 테다. 그 수고로움을 포기한다든지, 아예 그 방향에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으면 노후의 아름다움은 먼 거리에서나 바라보아야 하는 감상화에 불과할 뿐이다. 살아온 열정만큼 남은 시간도 뜨겁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 작은 싹에서 시작하여 작은 나무가 되고 새들이 깃드는 풍성한 나무가 되어 이제 다른 이들에게 쉼을 제공해주는 넉넉한 존재, 생각만 해도 영혼 깊숙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젊은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언급 못하는 내용을, 살아 온 자들은 자신 있게 표현해 낼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기쁨에 벅찬 순간들도, 그 찰나가 주는 것 이상의 깊은 슬픔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눈물의 여로(旅路)를 지나오면서 내세의 소망이 없었다면 힘든 순간들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사랑하고픈 마음이 없었다면,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각자의 개성을 공유하는 우정, 상대의 깊은 관심이나 이해로 인하여 군중 속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 빛나는 우정으로 인하여 생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사랑이 숨어있다.
일과 노동, 공기 속에서도 숨 쉬고 있는 사랑은 사도바울이 피력한 것처럼 삶에 있어서 제일가는 미덕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찾아오는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은 우리 자신이 미리 소유하고 태어난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 본능이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만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기대와 미래를 소망하는 마음도 가지게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최고의 선을 향해 나아가면서, 최종목표지점에 이르러서는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복락이기에 더욱 설레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영혼에 대한 기대,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이들에게 다가 올 노후생활이 활기 찬 삶으로 변하고, 그 순간들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뿌리 깊은 믿음을 가져, 새로운 진리 추구를 위하여 남은 날들을 영위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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