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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순종과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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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7-29 00:00 조회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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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순종과 축복(창세기12:1-3, 22:11-14)

창세기 12장 1절-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고 그를 불러 소명을 주셨다. 이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함은 물론이고 그가 평생동안 모아 온 재산과 살아하는 친척, 친구, 이웃 등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낯선 땅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그 계획은 그의 자손을 통하여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탄생하게 하시고 죄인을 부르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영적 자유, 죄에서의 해방의 놀라운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비옥한 초승달처럼 생긴 지역 아시아의 동남부에 위치한 문명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재산이 많은 우상장사의 아들로 철저한 이교도였다. 그는 유브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하류인 기름진 평원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죄악된 세상에서 분리하셔서 그로 말미암아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지시하신 땅으로 나아갔다.

창세기12장1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창대란 단어 Prosperity는 번영과 성공과 행운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부르시고 택하신 자를 창대케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번성, 행복, 성공, 명예의 근원이시다. 인간이 누리는 명예와 온갖 번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법이다. 사무엘상 2;7-8절에 보면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고 하셨고, 사무엘하 7장9절에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하셨다.

창세기12장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가 세우신 종 곧 주의 사자에 대하여 사람들이 올바른 태도를 갖기를 원하신다. 갈라디아서6장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마태복음10장40,41절에 ’너희(주의 종)를 영접하는 자는 나(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생활을 하였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이며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성취(벧후1:4)에 대한 환희와 믿음의 표현이다. 뿐만아니라 아브라함은 그가 소유한 물질도 전리품 중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 멜기세댁에게 드림으로 십일조를 드린 최초의 사람이 된 것이다. 수익의 십분의 일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것임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정성을 기울여 구분해 드려야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창세기 18장10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랑에게 아들이 있으리라“하니까 창세기 18장12절에 ”사라가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하고 웃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된 늙으막에 90대된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낳게 된 것이다. 이 아들 이삭이 재롱을 피우며 자라가는 모습은 늙은 아브라함 부부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창세기22장2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실로 아들 이삭은 소망이 없던 아브라함이 늙은 나이에 25년을 기다려 100세된 나이에 얻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었다. 따라서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심은 곧 아브라함의 삶의 보람과 모든 기쁨과 희망과 삶의 의미 모두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야 했고, 더욱이 자기 독자를 제사장의 손이 아닌 아비된 자기 손으로 배를 쪼개고 각을 떠서 불로 태워서 제물로 바쳐야 했다.

창세기 22장2절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풀리지 않는 이혹을 지그시 달래면서 아들 이삭을 데리고 지시하신 모리아 산을 향해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사환을 데리고 불과 나무를 가지고 올라갔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준비하시리라“(창22:8)라고 대답했다. 여기 이삭이 자신을 불사를 나무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인류 대속의 사역을 위해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요19:17).

마침내 모리아산 정상에 다다른 아브라함은 거기서 이삭과 함께 단을 쌓고 이삭을 불사를 나무를 벌려 놓은 다음, 밧줄로 아들을 꽁꽁 묶고는 제단 위에 아들을 얹어 놓고 칼을 들어 아들의 심장을 향해 내리치려는 순간, 다급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었다.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네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2, 18).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창22;13) 여호와 이레!

믿음이란 능동적이어야 하며 자발적 헌신이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향한 자기 결단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개혁의 종교이다. 개혁이란 새롭게 한다는 뜻 보다는 성경의 본래적인 뜻은 Reformed(리폼)이다. 폼을 바꾸는 것, 방향을 돌려 놓는 것을 뜻한다. 죄악 세상으로 달려가던 발걸음을 말씀 앞으로 하나님 앞,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Turning(터닝)하는 것을 뜻한다. 마니교를 믿고, 17세 때 소년일 때 사생아를 낳고 방종의 길을 걷던 어거스틴이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을 기도로) 서재에 들어가 책장의 성경을 펼쳐보던 중 로마서 13장 12절부터 14절 말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의 빛에 비침을 받고 가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고 기독교사에 가장 위대한 성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고 헌신하는 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성도의 삶의 지표는 분명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글쓴이 한수동 목사/사랑샘공동체 지도목사, 창원대천교회 은퇴목사,2020년 7월19일 사랑샘침례교회 주일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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