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다시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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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 0 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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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를 다시 살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여기 사랑샘교회에서 저를 새롭게 거듭나게 인도하여 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아버지 여기서 모든것 내려놓고 아버지 의지하며 아버지 뜻 받을어 예수님 냄새나는 삶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전에 아버지께서 지정하신 이곳 사랑샘교회에 두 목사님과 형제, 자매앞에 저의 지금까지 살아 왔던것 밝혀 멋진 아버지 앞에 멋진 아들로 살기를 원합니다. 오직 아버지의 섭리와 본질을 배워 저는 복을 받으며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저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는 이름은 윤ㅇㅇ 1958. 7. 3일생 서울이 고향입니다. 한 10살까지는 넉넉하게는 못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산걸로 기억합니다. 그후에 제가 5학년 여름방학때 어느날 어머니께서 연탄 난로를 들고 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제가 문을 열고 어머니와 제가 죽어가다가 산것이 제 기억에 안 좋은, 생각하기 싫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몇일 있다가 어머니와 논산 어디쯤 친척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잠이 깻는데 어머니하고 친척분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서울에서 자리 잡을때까지 저를 돌보아 달라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저는 이불속에서 눈물만 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니까 아버지께서 오셔서 다른곳 친척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다음날 똑같이 아침에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그저 이불속에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거기서 몇달 있으니깐 그 근방에 사시는 고모부께서 절 데리고 고모부 친척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는 양계장이었습니다.
거기서 한두달 있으니깐 고모부 할아버지께서 너는 여기 살 사람이 아니니깐 서울로 가라 했습니다. 서울 그쪽 친척집에 왔는데 종로5가에 있는 치과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원장님이 제가 어리니깐 보호자를 데려오라 했습니다. 그때 서울에 친척이 많아 그중에 작은아버지께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못 서주겠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막힌것은 그 원장님이 남인데 원장님 친구분한테 전화를 해서 거기는 치과와 치과기공소를 함께 하는곳 입니다. 근데 흔쾌히 드렁주며 거기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 어린 마음에 남들이 이렇게 날 생각하며 어떻게 그 순간 표현 할지를 몰랐습니다.
여기서 저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는 여자가 8명이며 어머니는 셋째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외동아들입니다. 이제 저의 사회생활이 13세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종로2가가 제 시발점이었습니다. 어린마음이지만 특히 전 가정의 불신 적대감 모든 면이 부정적 사고뭉치라는 삶으로 시작된 생활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에게 살아가야 했기에 다짐한게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더러운 세상에 더럽게 태어나 더럽게 살다가 더럽게 죽는다. 둘은 그러나 술, 담배, 여자, 돈에 의지 아니 하겠다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것은 그 빌딩에 종로서적이며 그 주위가 영화관이 많았습니다. 제가 사춘기때 모든 영향을 양아버지와 같은 원장님과 종로서적에 근무하는 형님이 있었는데 그래도 악에서 선으로 형성된건 이 두분 때문에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모와 같이 산 것이 20세부터입니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모든일을 원장님과 의논했습니다. 군대문제, 학력문제, 결혼문제, 기사에서 기공소 개업하는데 정말 친아들 이상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저의 실질적인 대부였습니다. 원장님께서 군제대하고 학원에 신청해주셨습니다. 또 감사한것은 국민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하니깐 국민학교 졸업장을 교장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아버지 때문에 독신으로 작정했지만 기술이전 문제로 2년 부산 출장길에 거기서 연애결혼했습니다. 결혼하기전에 나의 사정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어째거나 좀 문제가 있었지만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제 원장님이 부탁한 자격증 문제에 학원에 다녔습니다. 당연히 될줄 알았지만 결과는 중학교 검정고시만 7번쳐서 다 떨어졌습니다. 원장님이 빽으로 하자기에 그건 싫었습니다.
그후로 공부는 잊고살았습니다. 그리고 안정이 되어서 과거는 힘들었지만 특히 어머니가 무슨죄가있나 되도록 어머니한테 편안한 마음주며 살았습니다. 감사한것은 제가 망각을 잘합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아버지 하나님과 저를 사랑하심에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첫 신앙을 가진것은 39살때 그것도 거래처 원장님의 권유를 받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첫 주 교회에 나가서 참석 했을때 제가 무신론자였기에 좀 무감각했습니다. 아니 인정 안할려고 굳게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1달이 되어서 목사님이 저에게 다가와서 윤 0 0 씨 다음주에 암송말씀 준비하세요 이때 나도 모르게 전류가 흐르는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이삼일은 성경책이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목요일인가 보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말씀이 보였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말씀 여호와게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아멘.
그리고 넘기다가 고린도전서 13장 10절에서 13절말씀 "온전한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때에는 말하는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또 넘기다가 히브리서 4장12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영과 및 관절과 솔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에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말씀들이 제 눈에 꽉하게 들어오면서 생각에 저도 책을 좀 보는 편인데 이 글씨들은 정말 그순간 저를 꽉잡힘 그 자체였습니다.
그 흥분과 감격으로 그 주일에 암송하려고 섰습니다. 그런데 머리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주 안보였습니다. 그리고 셋째주 확실히 못했지만 해냈습니다. 그 순간 제마음속에 감사와 감격 무언가 이끄심이 돌보시는것 같았습니다. 그후부터 말씀이 재미있고 즐겁고 기뻤습니다. 10절, 20절, 1장, 1장 이렇게 아버지께서 저에게 오셨습니다.
지금 다시 회상하면 그 전율이 그 따스함이 다시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손짓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앙생활 10년동안 용서가 부모문제 특히 아버지 부분에서 조금씩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다시 찾은 진정한 아바 아버지앞에 육체의 부모를 용서가 먼저 되기를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10년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조금씩 시련이 왔습니다. 돈을 빌려준것부터 신앙문제, 가정문제, 게자 그때 생각하면 모든것이 나의 가식과 자존심 나의 의를 더 철저하게 자리 잡으며 산것이 아닌가 아버지앞에 회개합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을 떠난지 4년반 이 곳 사랑샘교회에 오기까지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1년쯤전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니 힘들었지만 몰랐습니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셨습니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돈가지고 한 기공소 파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6개월후에 이 기공소가 다른곳에 넘어가는 과정에 제가 무자격자 기공사라서 모든 면에 불리했습니다. 돈도 시간이 가야하고 힘들었습니다.
그후에 두달전에 여기 대구에 전에 거래처 원장님의 약속에 따라 내려왔지만 차일피일 이핑계, 저핑계 되면서 만났지만 계속 시간만 갔습니다. 저는 그돈 받으면 재기 할려고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전에 집에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 가정이 힘든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포기해야겠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보니깐 거기게 너무 기대하고 버틴게 제 불찰이었습니다.
저에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자살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죽자 그날이 비가오고 안개가 끼고 생각에 죽기 좋은 날씨구나 하고 보니깐 산이 보였습니다. 그 산에 가서 어떻게 죽을까 생각하며 시간이 흘러 죽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이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가 한 순간 말씀이 내 머리속에 떠 오르는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밍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또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길의 빛이니이다" 이 말씀들이 저를 잡아주면서 그 극의가 환한 빛으로 저를 반기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 십자가를 쫓아 다가가니 교회가 보이고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날이 마침 수요예배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안되어 계단에 앉자 기달리며 무작정 목사님을 보면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서울까지 가는데 도움을 청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좀 있으니깐 사모님이 내려와서 몇가지 물어 보기에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목사님께서 내려와서 예배가 시작되고 기도시간에 잠시 돌아보니깐 사모님 말씀에 개척교회고 함들다고 이야기가 생각나 일어날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아주시는것 같았습니다. 끝나고 사정이나 목사님께 상담해보자 그리고 상담중에 목사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왕 혼자이면 서울이나 대구나 마땅치 않으면 마산에 일단은 의식주가 해결되는곳이 있는데 거기서 영육간에 추스르며 성공하라기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날 저녁 잘먹고 잘자고 마산에 도착해 사랑샘교회에 왔습니다.
우선 저를 받아주신 강성기목사님과, 이종길목사님,나형준원장님,김동석무님,이기훈간사님,사모님 외 형제 자매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제일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됨을 감사드립니다. 강목사님과 특수사역을 통해 저도 이제 제대로 훈련받고 연단 되어서 다시 새롭게 기회주신 아버지 앞에 두 분 목사님과 형제자매들과 이곳에 사역에 맞는 새로운 길에 영원한 진리의 도인 그리스도 예수의 도를 증거하며 증인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끝으로 시편 8편4절 "사람이 무었이간대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여러분 고맙습니다.
2010.1.30.
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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