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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유혹 -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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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0-17 00:00 조회2,0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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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유혹
 글쓴이: 김택수(bbf)조회: 220 | 글쓴날짜: 2007-03-08 오후 4:13:00 


 


산본성서침례교회에 다니는 어느 성도가 신호대기 앞에 서 있는데 신호가 바뀌면서 뒤차가 먼저 출발하여 산본교회 성도님의 차를 순간적으로 추돌한 적이 있다. 성도님이 탄 차는 서 있던 자리에서 5m나 앞으로 튕겨나갔다. 뒤 범퍼가 타이어에 닿을 만큼 충격이 컸다. 뒤에서 추돌한 여성 운전자는 처음엔 자신이 엑셀레이터를 먼저 밟아서 추돌하여 미안하다고 말했다가, 경찰이 오자 더 불리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싹 바꾸더란다.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지면서 차가 앞으로 미끄러지듯 진행하여 살짝 부딪쳤다고…. 상황이 불리해질 것 같으니까 자기를 이롭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경찰은 상황을 관찰하더니 여성 운전자를 나무랬다. “이게 과연 살짝 부딪친 거냐?” 경찰은 여성운전자의 거짓말을 질책하였다. 그것이 부패(腐敗)한 인간의 마음이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혹은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보라는 은근한 유혹을 받고 두 번이나 넘어졌다.

필자가 수년 전에 겪은 경험이다. 어느 날 산본에 있는 어느 책방에 가서 신간 서적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유명 신문사에서 나온 책자 중에 산본교회에 피해를 끼친 어떤 사람이 쓴 책이 출간 된 것을 보았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하여 그 작가를 어떻게 책에서 소개했는지 궁금했다. 그 작가는 이렇게 소개되었다. “뛰어난 영성작가로….”



그를 소개하는 글을 보는 순간 필자는 빈정거리고 싶은 생각과 분노가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책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뛰어난 영성작가랍니다. 이런 기가 막힌 세상이 있나! 자신을 믿어 준 사람을 배신하고, 일꾼을 꼬드겨서 그의 앞길까지 험악하게 만든 사람이, 자기와 함께 일한 사람마저 어렵게 만든 사람이, 교회에 고통을 안기고, 여러 사람이 교회를 떠나게 만든 사람을 보고 뛰어난 영성작가래요.”

필자는 그 책을 땅 바닥에 집어던지고 싶었다. 큰 소리로 고함칠 뻔했다. 그 고함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겠지만….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필자 앞에 ‘뛰어난 영성작가’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자 순간적으로 감춰진 상처와 분노의 이빨을 드러냈다. 그를 망신을 주고 복수하는 것이 필자의 권리(權利)인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이 필자에게 한 것처럼 갚아주는 것이 정당방위(正當防衛)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복수(復讐)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그 때 마산 사랑샘교회 강성기 목사님이 책방에 있는 필자에게 전화를 하셨다. 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채플이 화요일마다 있는데 이날 신학교 채플에서 강목사님이 설교하고 마산으로 내려가시면서 필자에게 안부전화를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목사님 설교가 생명의 삶 11월 1일자에 예화로 실렸어요.”



전화를 끝내고 무슨 글이 실렸나 궁금해서 「생명의 삶」11월호를 열어보았더니, 그 날의 본문이 사무엘 하 16장 1-4절이고, 제목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였다. 그것은 은근한 복수심에 불타 평안을 잃어버린 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에겐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고는 필자 자신은 복수심에 불타자 성령 하나님께서 일깨워주신 것이다. 필자가 이전에 쓴 책에서 「생명의 삶」에서 인용한 글 중 뒷부분은 이렇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잊고 살더라도 나만큼은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요, 고약한 사람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잘못된 사명감으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불필요한 기억들을 마음의 냉장고에 냉동시켜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서 쓴맛이 느껴지는 요리를 하지 마십시오.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상처를 알고 계시므로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김택수, 「16가지 삶의 난제 뛰어넘기」)

이것은 복수심에 불타는 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어리석은 하나님의 종이여,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라!” 하나님은 얼마나 정확한 시간에 당신의 어리석은 종들에게 말씀하여 주시는가! 필자는 그 날 책방에서 강성기 목사님을 통해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당한 만큼 갚아주라는 은근한 복수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다. 교회끼리 친선축구를 하는 곳에서도 막무가내로 밀고, 아프게 차대는 상대방 선수를(그들이 주님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기회에 모른척하고 발등이라도 한 번 밟아주고 싶어지는 유혹을 필자는 받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서나 복수하고 싶은 은근한 유혹을 받는다. 부당한 대우에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앙갚음하라는 은근한 유혹을 거절하기 어렵다. 상대가 악하게 나오니까 악하게 반응하는 것이 뭐 나쁘냐는 논리에 긍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경은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말씀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은근한 복수의 유혹을 이기자.

우리들은 또 다른 은근한 유혹 속에 산다.하나님의 길(way)을 아주 조금만, 아주 잠간동안만 벗어나고픈 유혹이다. 하나님의 때(timing)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고 싶은 유혹이다.결과만 좋으면 괜찮지 않느냐는 상황윤리(situational ethics)의 유혹이다.

너무 현실(現實)이 힘드니까, 그 힘든 상황을 끝낼 수만 있다면, 돌파구가 있다면 기도해 보기도 전에, 그 일의 정당성이나 그 일의 합법성을 따지기도 전에 덜컥 사탄이 주는 미끼를 물어버리는 은근한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이 멸망에 이르는 은근한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들이 받는 은근한 유혹은 도처에 많다.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면 그 만큼 빨리 왕이 될 수 있다고 부추겼다.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동굴로 들어와 그의 갑옷을 벗고 칼을 옆에 내려놓았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다윗을 설득했다. “다윗 왕이여, 노마크 찬스입니다. 사울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원수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제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십시오.” 이 유혹은 지름길(short cut)의 유혹이다. 빠른 길의 유혹이다. 예수님도 이 시험을 받았다.

십자가 없이 영광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고 사단은 부추겼다. 예수님은 단호히 거부했다. 다윗도 지름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목회가 어렵고 힘들면 이 은근한 유혹에 모른척하고 굴복하고 싶어진다. 다른 길을 모색하라는 유혹이 마지막 남은 선택처럼 생각된다. 제대로 인정 못 받는 목회사역에 진저리를 치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좀 더 대우받는 곳을 찾아보라는 제안이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잊지 말자. 하나님의 우회로(迂廻路)가 인간의 지름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정확(正確)한 타이밍에 맞춰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은근한 유혹을 이겨내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 


[출처] 묵상|작성자 사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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