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운동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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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운동회에서
정영숙
봄 가을이 되면 마산 교도소에서는 정기적으로 운동회를 한다. 3년 전 가을 운동회였다. 교도소의 넓은 운동장에는 푸른 수의를 입은 남자 재소자들과 흰 운동복을 입은 여자 재소자들이 모처럼 만나 들뜬 마음으로 시끄럽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또 내빈석에는 소장님, 지역유지들, 각 종파의 종교위원과 교화위원들, 또 위문 차 온 고전무용 단원들이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식이 시작 되었다. 악대들이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하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있는 순간에 선수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든 동물 형상과 커다란 거북선을 끌고<갱생!>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입장을 했다. 참으로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이었다.
소장님의 훈시, 내빈소개, 모범재소자 아내에게 전달하는 위로금 전달을 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삼십여 가지의 경기 종목이 있는데 그 중 <내빈호출>이라는 경기가 있다. 그 경기는 쪽지에 내빈 이름이 미리 써서 있는데, 선수는 쪽지의 사람을 호출하여 손잡고 빨리 뛰는 것이다. 나는 그 호출경기가 언제쯤 진행되는 것도 잊어버렸고, 또 알았더라도 설마 60이 넘은 나를 부르리라고 생각도 아니 했기 때문에 다른 경기를 보고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확 밀어내는 사람이 있어 순간적으로 내빈석 앞을 뛰어 나갔다.
나를 호출한 짝지는 20대 여성이다. 그녀는 급히 내 손을 잡고 마구잡이로 뛴다. 어릴 적부터 운동 신경이 둔하여 달리기만 하면 꼴지 아니면 그 다음 등위를 하던 내가, 갑자기 불려나와 젊은이와 따라 뛰자니 죽을 고생이었다. 다리가 질질 끌리면서 가슴에 송곳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호흡도 콱 멈출 것 같았다. 현기증도 났다. 식은땀이 쏘삭쏘삭 돋았다. 정말 이대로 뛰다가 죽던지 불구자가 되던지 할 것 같은 불안함도 왔다. 그런 불안증이 반복되어 일어나더니 그만 엎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반딧불 같이 번적거리는 가족의 얼굴, 나는 일어나려고 몸을 비비적거렸다. 눈을 떠서 짝지를 바라보니 안타까운 눈으로 서 있다. 이미 등위를 포기한 짝지는 끝까지 가기만 해도 상(賞)이 있다면서 다시 뛰자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하여 다시 손을 잡고 뛰었다. 그러나 운동장 가운데쯤 가서 또 넘어졌다. 처음보다 더 한 아픔이 왔다. 도저히 일어날 수도 더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증상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대중 앞에 넘어지고 나니 부끄러워 엎드려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 정영숙선생님 파이팅! 파이팅! ”하고 외쳤다. 그 외침에 용기를 얻어 겨우 일어났다. 세 번째의 시도는 남은 거리를 그냥 걸어서 내빈석까지 가는 것이다.
칭찬인지, 격려인지, 아니면 지금 몇 살인지도 모르고 기분만 살아 겁도 없이 뛰었나? 하는 비아냥인지는 몰라도 몇 사람이 나를 보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그날의 고생을 교무과장님은 추억으로 생각하라고 하고, 직원들은 내가 많이 다칠가봐 몹시 겁을 먹었다고 하며, 재소자들은 끝까지 함께 뛰어주어 너무나 감동 먹었다고 했다.
교도소 정문 앞에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나는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에 빵을 사서 먹으며 죽을 고생을 한 이야기를 했다. 제법 내 말을 잘 들어주던 아주머니가 뛰다가 두 번을 넘어져 죽을 번했다는 그 말을 듣더니 화를 벌컥 내며“ 아주머니가 올해 몇 살인데 몇 달을 연습한 그들과 같이 뛰겠다고 나갔소. 다행이 상대가 여자이기에 그만했지 남자였더라면 죽었소! 죽었어!” 하고는 혀를찼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느끼면서 자존심에 참말로 몇 달 연습을 하더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장사 하면서 그들이 연습하는 소리를 매일매일 들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누었다. 밤을 지새우는 동안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쪼여오는 통증이 자주 왔는데, 날이 밝기를 참고 기다리다 병원엘 갔다. 의사가 내 말을 듣더니, 젊은 사람도 꾸준한 운동을 하여야 되는데 나이 육십 넘어서 갑자기 뛰었으니 고생 안하고 되겠어요? 하며 앞으로는 절대로 건강에 신경을 써야 된다고 충고를 했다.
내가 평상시에 운동, 등산, 걷기라도 꾸준히 했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중 앞에서 수치도 당하지 않고, 듣는 이들에게 나이도 모르고 어리석한 짓을 했다는 찔림의 말도 듣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후회와, 연습 없는 삶의 성공은 절대로 없다는 진리를 교도소운동회에서 깨달았다.
내일
운동 경기장에 갔다
호르라기 소리에 뜀질을 한다
선수들 다리가 20개 뛴다
또 다리 20개가 줄달아 서 있다
기차를 타려갔다
발착역도, 간이역도, 종착역도 아닌
어딘가 역에
멀리 철로위에 기적소리 띠띠-
나는 그 소리에 목줄을 길게
뽑고 서 있다.
jhemi님의 블로그교도소 운동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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