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시골 길 완행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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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시골길 완행버스를 타고
정영숙
무더위가 갈 생각을 하지 않는 8월 어느 날. 시골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러 길을 떠났다. 버스를 탔다. 완행버스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은 감히 바랄 수도 없는 낡은 버스였다.
처음 탈 때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좌석을 택하여 앉았다. 그 차에 승차한 몇 사람도 나와 같은 방향에 앉았다. 한두 정거장은 그런대로 그늘에 덮여 시원하였다.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보다 신선하고 정겨웠다. 바람이 정겨웠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시골길을 달릴 때에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시면 정이 유달리 많으신 고모님 같아 바람에 코를 들이대며 숨을 쉬어 보기도 한다.
털커덩 털커덩 차는 달린다. 아스팔트길을 미끄러지듯이 잘도 간다. 그러나 비포장 길을 달릴 때는 온몸 운동을 한다. 먼지가 한꺼번에 들어와 눈이 따가울 때도 있다. 이미 떠날 때 각오한 것이기에 짜증 따위는 사치다. 나야 어쩌다 타는 완행버스지만 늘 상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평이란 양심 밖의 행동이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바뀐다. 한 정거장씩 지날수록 숫자가 많아진다. 차안의 온도는 높아져 가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늘이 내 쪽 방향을 피하여 반대 방향으로 갔다. 커텐을 찾았다. 땟국이 묻은 커텐이지만 햇빛을 가리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나마 커텐의 넓이가 좁아서 앞사람이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니-나는 후회를 하였다. 미리 탈 때 왼쪽으로 앉았더라면 이런 고생을 아니 할 텐데. 뻔뻔스런 후회였다. 읽던 책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조금 전에 가졌던 후회를 반성하였다.
내가 편안히 올 때에 반대쪽의 사람들도 얼마다 고생을 하였을까. 그들은 나처럼 얼굴을 가리거나 짜증스런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단념을 하고 온 것 같았다. 햇볕은 어두울 때나 추울 때에는 소중한 보석과 같은 물체지만, 땡볕이 내려쬐는 대낮에는 지천꾸러기와도 같다. 아,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는 간사스러움. 막상 겨울이 오면 여름을 기다릴 텐데 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동물인지 모른다.
위태위태한 고갯길을 운전하는 기사의 노련한 기술에 감탄을 하였다. 기술은 오랜 연습이다. 누군가가 ‘인생은 연습이 없으되 성공은 연습한 횟수대로다’ 라고 말했던가, 꼬불꼬불한 고갯길. 핸들을 요리조리 신나게 돌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가는 기사 아저씨가 존경스러웠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했더니, 그 기사 아저씨하시는 말씀이“이 더운데 앉아 오시느라 되러 고생을 하였지요. 냉방 시설도 없는데-” 무려 4시간의 지겨운 여행이었지만 기사분의 말 한마디에 몸과 마음을 씻었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
인생은 여행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든, 배를 타고 가든, 기차를 타고 가든, 버스를 타고가든, 걸어서 가든 가야한다. 어차피 신이 정해 준 그 길, 그 곳을 가야한다. 내가 아무리 행. 불행을 선택하여 가고 싶고, 또 선택을 해서 떠났다고 하여도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오십세가 넘어서야 인생을 좀 때달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불행이 와도 나는 행복하리라고 자부했던 20대. 다른 사람은 늙어도 나는 늙지 않을 것이라는 믿었던 40대의 무지와 교만을, 생의 후반부에 와서야 깨닫고 고개 숙인 어리석음.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간다. 간다. 여행을 간다. 어차피 갈 것이라면 내가 탄 버스를 반대편 사람들처럼 각오하고 가야 괴로움이 적고, 운전기사 아저씨 같이 더워도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이 즐거운 인생이다. 내 나이 60세인데 여생에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를 간직하게 될 것이며, 시골길 같이 덜커덩 덜커덩 거리며 갈 것인지 하나님 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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