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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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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숙
작성일09-04-21 00:00 조회1,9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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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교훈
정영숙

국제 통화기금(IMF)의 파도가 밀려오는 새해 아침에 우리 가족들은 등산을 하기위해 길을 떠났다. 무학산 입구에 다다르니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가족과 함께 등산복 차림으로 헐떡헐떡 올라가고 있었다. 겨울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린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과 마른 나무 가지들이 목말라 가는 이 시국을 풍자하는 하는 듯 버석버석 비틀고 서 있었다.

처음 계획은 기도실이 있는데 까지만 가기로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정상아래 있는 ‘십자바위’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등산을 별로 해보지 못한 나는 좁고 높은 산길을 올라가려니까 다리가 무겁고 후들후들 떨려 되돌아갈까 했는데, 내 손을 잡고 가던 꼬마 질녀가 “고모, 이렇게 힘이 드는데 등산은 왜 해요? 그만 내려가요” 하며 졸랐다. 나는 학생들 가르치던 습관이 몸에 배어 “ 그래, 질문 잘 하였는데, 등산은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 고 하였다. 이해를 한 똑똑한 질녀가“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겨야지” 하고는 빈 물통을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절반을 올라가서 마산시의 오른편 전경을 보았다. 고요함이 이불처럼 깔려있는 바다에는 배 몇 척만이 외롭게 떠 있고. 큰집 작은 집 그 가운데 거대하게 버티고 서 있는 고층 아프트, 그리고 재빠르게 달아나는 차들, 이 모두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아흡살짜리 질녀 소례는 고층 아파트 곁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고 작은 집들을 가리키며 “고모, 저기 저 아래 쬐그만 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 라고 질문을 하기에 “ 응, 살고있지”라고 하니까 “ 그르면 저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슬프게 살아요? ”하며 꼬치꼬치 질문을 하였다.

나는 한국전쟁 때 피난 가던 이야기와 예전에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 이야기 등을 예를 들어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집이 작고 크고 에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집 속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좁으면 슬프다고 하였더니 대뜸 “그러면 거기가 IMF야?” 라고 해서 내 말을 이해 한 건지 못한 건지 몰라서 그 이상 말을 안 하고 올라가자고 하였다.

아슬아슬한 뾰족 바위를 밟고 가던 꼬마가 한칸한칸 올라갈 때마다 “고모, 내 손 잡아요” 라며 소리소리 지른다. 내가 아무리 등산을 못해도 아홉 살짜리 보다 못 하겠나 만은 고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고, 우습고, 기특하여 마음으로 내 남동생이 딸만 둘 낳았지만 걱정은 없다고 자신했다.

드디어 목표의 바위에 올라섰다. 널따란 바위 품에 안긴 우리 일행은 애국가를 부르고 난 후, 다리를 펴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 각기 환희의 고함을 질렀다.

마산시의 몸통이 다 보였다. 비행기나 고층 옥상에서 보이는 시가와는 전여 다른 감동이다. 내 눈 아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하여 절을 하는 것 같은 영웅심도 타 오른다. 빈 물통 3개만 가지고 왔지만 부자가 된 것 같은 배부름도 느꼈다. 하늘 가까이 왔으니 하나님이 손을 잡아 올리는 기쁨도 솟구친다.

우리들은 가슴에 막혀오던 삶의 불순물을 바람에 다 날려버리고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어깨에 아기를 올려놓은 사람, 일곱 살 정도의 지체장애아가 칭얼거리니까 호되게 야단치며 데려가는 아저씨. 남편의 팔을 붙들고 신바람 나게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나는 평상시 산악인들을 겁 모르는 사람, 특별한 짓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등산하다 다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을 뉴스로 보면서 왜 저런 무모한 짓을 하여 화를 당하는지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목숨 걸고 히말리아를 정복해 보려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경하였다.

인생은 고난의 산을 올라가는 연습과정이다. 헬리곱터를 타고 가는 편안한 사람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도 만지고, 꽃도 보고, 새 소리도 듣고, 돌 뿌리에 찢기거나 눈에 미끄러지는 사람이나 목표를 향해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행복의 비중과 온도는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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